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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노트

[자기계발] 끝까지 하는 힘_나를 바꾸는 아름다운 열정

by 노트바이S 2025.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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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 끝까지 하는 힘_나를 바꾸는 아름다운 열정

제목 : 끝까지 하는 힘
저자 : 김이율
출판 : 판테온하우스
발행 : 10.10.15
쪽수 : 232쪽
ISBN : 9788996439370

『끝까지 하는 힘』표지

 

세계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들이 말하는 3가지 성공비결

첫째, 오래 살아라

둘째, 한 가지만 해라

셋째, 끝까지 해라. 

 

그러나, 

무엇이든 끝까지 하는 사람은 채 1%도 되지 않는다. 


멕시코 중서부 시에라 협곡에는 타라후마라 부족이 살고 있다. 그랜드 캐니언에 비교될 만큼 높고 험준한 협곡에 사는 그들은 인류학자들의 오랜 연구대상이다. 어디를 가든 걷거나 달리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달리기를 잘하는 부족으로 그 명성이 자자하다.

그러나 그들에게 달리기는 취미가 아니다. 그들에게 있어 달리기는 생존방식이다.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달리기를 잘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사냥을 할 때도 쉬지 않고 끝까지 달림으로써 사냥감을 지치게 하여 사냥에 성공한다.

즉, 사냥 목표를 한 번 정하면 눈앞에 다른 동물이 있더라도 목표를 바꾸지 않고, 사냥감이 지칠 때까지 쫓아 반드시 잡고야 만다.

 

한 번 목표를 정하면, 바꾸지 않고 끝까지 하는 힘!

그것이 바로 성공의 비결인 것이다.


끝까지 하는 힘 13_전성희

명품을 바라지 말고 스스로 명품이 되어라

 

다이아몬드는 어디에 놓여 있든 빛나기 마련이다.
그 이유는 뭘까? 바로 숨길 수 없는 명품의 가치 때문이다.
다이아몬드가 흙이 좀 묻었다고 해서 다이아몬드가 아닌 건 아니다.
명품은 결국 명품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다 명품만 있는 게 아니다.
비록 명품은 아니지만 스스로를 가치 있게 생각하고 가꾼다면 그게 바로 명품 인생이 되는 것이다. 때론 명품도 만들어진다.
국내 최고령 비서가 있다. 그녀의 나이는 67세다.
여전히 그녀는 자신의 회장님을 극진히 모시고 있으며 똑똑하고 일처리 잘하는 비서로 인정받고 있다. 그녀의 이름은 ‘전성희’다. 그녀는 자신을 스스로 명품으로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그녀가 처음 비서 일을 시작한 건 서른 중반이 넘었을 때다.
사실 그녀의 꿈은 따로 있었다. 교수의 부인으로 살면서 못다 한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게 여의치 않았다.
그녀는 1961년 인천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약학과에 입학했고 졸업과 동시에 약사 면허를 땄다. 그러나 약사 대신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러다가 결혼을 했고, 남편과 함께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남편이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서다. 그녀는 보석가공 공장 생산직원으로 일하면서 남편의 공부를 뒷바라지했다. 그리고 미국으로 간 지 10년 만에 부푼 꿈을 안고 귀국했다.
“이제 내 남편이 교수니까 생활의 여유가 생기겠지. 그럼 나도 공부를 좀 해야지.”
그러나 현실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박사학위가 있다고 해서 정식 교수가 되는 건 아니었다. 남편은 시간강사로 일했다. 물론 생활이 어려웠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녀는 취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이 바로 대상산업 김영대 회장의 비서 자리였다.
그때, 당시 김영대 회장은 상무였다.
입사 첫날, 그녀는 김 상무에게 물었다.
“상무님, 왜 저를 뽑아주셨습니까? 젊은 아가씨들도 많을 텐데, 저는 서른일곱입니다.”
“젊은 처자들은 금방 그만둡니다. 저는 제 옆에 오래 있을 진득한 사람을 원합니다. 그래서 결혼한 아줌마를 뽑은 겁니다. 그리고 전 비서가 일도 잘할 것 같고요.”
그렇게 해서 비서 일을 시작했다. 상무실은 늘 거래처 사람들과 해외 바이어들로 붐볐다.
“전 비서, 우리 커피 좀 줘.”
“예, 상무님.”
그녀는 열심히 커피를 타고 바삐 커피를 날랐다. 블라우스가 땀으로 흥건히 젖었다.
손님들이 다 빠져나가고 그녀에게 잠깐의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그런데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깊은 한숨이 나왔다.
“도대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그녀는 혼잣말로 계속 중얼거렸다.
“곧 있으면 교수 사모님이 될 텐데, 여기서 커피나 타고 있다니. 엄연히 나도 약사인데….”
자존심이 약간 상했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보란 듯이 완벽하게 해내고 싶었다.
“그래, 내 스스로 명품 비서가 되는 거야. 커피를 타고 나르는 것은 상무님과 회사의 이미지를 나르는 거야.”
그렇게 생각을 고쳐먹으니 일이 즐거워졌고 그보다 더 궂은일도 해낼 수 있었다. 그녀는 상무의 구두를 직접 닦기도 했다. 그리고 상무가 바이어를 만나기 전, 그녀는 상무의 옷매무새를 점검했다.
“상무님, 셔츠 단추가 떨어지려고 해요.”
그녀는 호주머니에서 실과 바늘을 꺼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셔츠의 단추를 수선했다.
“전 비서가 있어서 늘 든든해. 전 비서 덕분에 오늘 일은 잘 성사되겠는걸.”
그녀는 비서라 함은 자신이 모시는 사람의 그림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단순한 보조 역할을 넘어 파트너십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명품비서가 되기 위해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다. 일단 업무 능력을 키우고 외국어 공부에 열중했다.
매일 새벽 6시부터 2시간 동안 영어와 일본어는 물론 중국, 프랑스어까지 공부를 했다.
1990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회장이 불가피한 일로 미국에서 9개월 동안 머문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 독일 회사와 중요한 합작을 추진 중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회장의 일을 대신해야 했다. 그녀는 독일로 건너가 교육을 받고 조사보고서를 꼼꼼히 살핀 후 독일 기업과 협상을 성사시켰다.
커피를 타고 셔츠 단추를 다는 일로 시작했지만 그녀는 지금 그룹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추적인 인물이 되었다.
내일모레면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이지만 여전히 청소 아줌마 다음으로 일찍 출근을 하고 30년째 비서계의 대모로 건재하고 있다.
그녀는 말한다. 명품비서, 아니 명품인생을 살기 위해서 필요한 건 체면이나 자존심을 버리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그리고 그다음이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의 실력을 쌓는 것이라고.


끝까지 하는 힘 14_찰스 루이스 티파니

혼을 담아 빛나는 명품을 만들어라

 

선글라스를 끼고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오드리 헵번이 보석 상점의 진열대에 놓인 반지를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는 장면을 기억하는가? 그 장면은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다.
여자라면 누구나 명품보석 하나쯤을 갖길 원한다. 그리고 이왕이면 그 보석이 대표적인 명품 브랜드인 ‘티파니’ 제품이길 원한다. 티파니 제품을 가지고 있으면 자기 자신이 명품이 된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티파니가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선망의 대상이 된 이유는 뭘까?
고가의 제품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화려하면서도 간결한 도시적 디자인과 정교함, 사랑의 상징 그리고 장인의 정신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티파니는 다양한 크기와 섬세한 커팅 기술로 최상급의 다이아몬드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커팅부터 광채를 내는데 까지 무려 20번이 넘는 공정과정을 거치고 있다. 그러기에 명품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티파니를 세운 사람은 ‘찰스 루이스 티파니’이다.
그는 미국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면화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 일을 도우며 인생을 배우고 사회를 배웠다. 사춘기 시절을 거쳐 그도 어느덧 피 끓는 청년이 되었고 뭐든지 혼자서 해보고 싶었다.
“아버지, 저 뉴욕으로 가겠습니다.”
아들의 꿈을 믿고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1,000달러를 주었다. 그 당시에는 아주 큰돈이었다.
“이 자본금으로 네 꿈을 맘껏 펼쳐보렴. 그리고 무슨 일이든 철저히 완벽하게 하길 바란다.”
그는 사업 파트너로 학교 친구인 존 영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뉴욕으로 향했다. 뉴욕에 도착한 티파니는 높은 건물을 올려다보며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래, 기다려라. 내가 이 건물들을 다 사고 말 거다.”
그는 친구 영과 첫 사업으로 ‘티파니 앤 영’이라는 문구점을 열었다. 사업치고는 너무나 소박했지만 그들은 그 사업을 토대로 새로운 무언가를 하고자 했다. 그들은 뉴욕 거리를 걸어 다니며 미국 신흥 부호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돈을 벌기 위해선 부호들의 취미나 성향을 알아야 해. 그들의 지갑에서 돈이 나오도록 해야 해. 그럼 큰돈을 벌 수 있을 거야.”
신흥 부호들의 뒤를 밟으면서 알아낸 사실은 그들은 은그릇이나 집 인테리어 그리고 보석에 관심이 무척 많고 그것들을 구입하기 위해 돈을 물 쓰듯이 쓴다는 것이었다. 그는 친구 영에게 말했다.
“영, 바로 그거야! 보석상을 하는 거야. 그럼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거야.”
“그래, 좋은 생각이야. 일단은 보석 유통을 하고 나중에는 우리들만의 기술과 정신을 담은 멋진 보석을 만들자.”
그렇게 해서 티파니는 보석 판매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는 일단 제품이 훌륭해야 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마케팅 전략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소비자들의 마음을 읽고자 했다.
1861년 남북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그는 진열대에 보석이 박힌 십자가를 내걸었다. 전쟁 중이기에 반지와 목걸이는 왠지 사치스럽게 느껴지고 소비자들에게 반감을 일으킬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고 유명을 달리한 사람들을 기리는 애도용으로 십자가 보석을 출시한 것이다. 그 십자가 보석은 대박이었다.
그는 그 성공에 힘입어 더더욱 박차를 가했다.
1845년에는 처음으로 주문방식을 채택했다. 주문방식을 통해 고급화를 꾀했다. 주문방식은 보석점뿐만 아니라 다른 장사꾼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쳐 여기저기에서 주문방식 전략이 붐을 일으켰다.
티파니는 제2의 도약을 꿈꿨다.
“언제까지 보석을 판매하고 배달하며 살 순 없어. 직접 보석을 제작하는 거야. 충분히 그럴만한 단계에 와 있어. 끼와 혼을 담는 거야.”
그는 뉴욕 최고의 은 제조업자를 수소문했다. 최고의 보석을 만들기 위해선 최고의 기술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그는 존 무어라는 기술자를 영입해 직접 보석 장신구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무어 씨, 이 부분을 조금 더 섬세하게 해 주세요. 그리고 이 부분은 굴곡을 더 줬으면 합니다. 힘들어도 이해해 주세요. 제 스스로 만족해야 이 보석을 사는 사람들도 만족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최고가 아니면 시작도 안 했습니다.”
최고의 명품을 추구하는 그의 정신과 기술자의 장인정신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1867년에는 국제장신구전시회에서 은 공예부문 금메달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그의 명성은 높아만 갔고 그가 만든 보석의 가치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부자들은 그가 만든 보석제품을 가지려고 난리법석이었다.
“조금 더 기다려주세요. 우리 제품은 공장에서 막 찍어내는 값싼 제품이 아닙니다. 장인의 손끝으로 만들고 디자이너의 감각이 실린 최고의 명품입니다. 기다려야 살 수 있는 제품입니다. 그게 명품 아니겠습니까?”
티파니는 현재 세계 각국에 매장을 두고 있으며 아름답고 고급스러운 보석들로 많은 이들의 마음을 훔치고 있다. 보석뿐만 아니라 시계, 식기류, 문구류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렇게 티파니가 사랑을 받는 이유는 티파니의 창업자인 ‘찰스 루이스 티파니’의 뛰어난 마케팅 능력과 도전정신 그리고 최고만을 추구하는 명품정신이 제품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끝까지 하는 힘 15_미켈란젤로

최고가 되려면 프로정신으로 무장하라

 

‘몸과 마음과 영혼의 부자가 되는 법’이라는 주제로 사람들에게 명강의를 펼치고 있는 데릭 스위트는 그의 저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100%를 살기 위해선 오늘 미쳐야 합니다. 뭔가에 미친 듯이 몰두할 때, 우리는 진정으로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입니다. 미친다는 것은 열정으로 넘치는 것이고, 기분이 한껏 고조되어 있을 때 열의를 억제하지 않는 것입니다. 미치면 무의미한 것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세상에서 의미 있는 것들을 찾아낼 수 있게 됩니다.”
성공을 한 사람들을 보면 다들 그들의 일에 미쳐있다. 미치지 않고는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없고 발전할 수도 없다. 쉬엄쉬엄, 대충대충, 얼렁뚱땅하다가는 결코 최고가 될 수 없다. 집중력과 프로정신으로 무장해야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미켈란젤로도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고 그 일을 즐겼으며 그 일에 미쳐있었다.
그는 이탈리아 카프레세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에 관심과 재능이 많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가 그림 그리는 걸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깟 그림이 뭐가 좋다고 그리는 거야. 그림쟁이는 손가락질을 받는단 말이야. 돈을 많이 벌려면 그런 건 필요 없어! 장사를 해야 한단 말이야.”
그래서 어린 미켈란젤로는 아버지 몰래 그림을 그렸다. 주로 마사치오의 그림을 보며 그대로 따라 그렸다. 마사치오는 회화에서 원근법을 사용하여 최초로 그림을 그린 그 당시 알아주는 화가였다.
몰래 그림을 그리다가 아버지에게 들키는 날이면 아버지에게 호되게 꾸중을 들었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다. 가슴이 시키는 일이기에 멈출 수 없었다.
결국 그의 꿈은 이루어졌다. 그의 실력을 알아본 화가들이 그에게 기회를 주었고 그는 화가 도메니코 밑에서 그림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피렌체의 예술가들을 후원하던 메디치 가문의 화가 집단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그가 어느 부잣집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그는 정원 일을 하면서도 미술을 하고자 하는 열망은 숨길 수 없었다.
그는 하루 종일 정원 가꾸기에 열중했고 저녁이 된 후에도 정원을 떠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정원을 더 아름답게 가꿀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런 고민 끝에 그는 나무 조각품을 만들어 정원 곳곳에 놓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나무를 조각하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드디어 조각품이 하나 둘 완성이 되었다. 조각품이 있는 정원, 그 정원은 더더욱 아름다웠다.
주인은 그 조각품을 보며 흡족해했다. 그리고 그에게 물었다.
“월급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왜 굳이 이 조각품을 만들었니?”
“예술작품은 돈으로 따질 수 없습니다. 또한 저는 제 손길이 닿는 거라면 완벽하게 해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정원을 꾸민 것입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주인은 그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
미켈란젤로의 열정은 마침내 그를 위대한 화가로 만들었다. 그는 교황 줄리오 2세의 간곡한 부탁으로 바티칸 베드로 성당 옆 시스티나성당 천정 벽에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동안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마음이 흐트러지는 순간, 그림이 엉망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연필과 붓으로 그림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가 무슨 그림을 그리는지 궁금했던 교황은 그와의 약속을 어기고 그림을 몰래 훔쳐봤다. 그 사실을 안 그는 교황에게 따졌다.
“왜 저와의 약속을 어기십니까? 제 그림이 완성될 때까지는 그 누구도 볼 수 없다고 했잖습니까. 저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겠습니다.”
그 일로 미켈란젤로는 피렌체로 떠나버렸다. 그림에 대한 강한 애착감과 예술혼을 엿볼 수 있다. 교황은 전국에 지명수배를 내렸고 결국 갖은 회유와 설득 끝에 그는 다시 붓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4년 5개월 만에 그림이 완성되었다. 그 그림이 바로 ‘천지창조’이다.
그의 두 번째 천정벽화는 ‘최후의 심판’이다. 그 그림 역시 미켈란젤로는 사람들의 출입을 막고 그림과 사투를 벌였다. 그림 또한 한 개 그 벽화에는 인물이 무려 300명 이상 들어가는 대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루 종일 그림만 그린다는 게 여간 힘든 작업이 아니었다. 계절이 수차례 바뀌고 그의 주름도 점점 늘어갔다. 어느덧 벽화에 손을 댄 지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의 한숨은 날이 갈수록 늘어갔다. 온몸이 쑤시고 아프고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급기야 등까지 굽기 시작했다. 영락없이 꼽추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는 붓을 놓지 않았다.
한 번 시작한 일은 반드시 끝을 봐야 하는 성격 때문이었다. 또한 이 그림을 이 세상에서 최고의 걸작으로 남기고 싶은 열망이 강했다.
한 번은 옆에서 그를 지켜보던 동료가 그에게 물었다.
“자네, 왜 그렇게 꽉 막혔나? 그 인물들은 아주 작아서 바닥에서 봐도 잘 보이지 않아. 그런데 뭐 하러 그렇게 꼼꼼히 그리나? 그냥 대충 그리게. 대충 그런다고 누가 알겠나?”
그러나 그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안 보기는 누가 안 본다고 그래! 다 보고 있다고, 내가 다 보고 있네! 내가 아는데 어찌 대충 할 수 있겠어?”
그는 붓을 놓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온 정신을 다해 그림을 그렸다.
그런 프로정신이 있었기에 오늘날에도 그는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함께 르네상스 시대 3대 거장으로 꼽히며 세기를 넘어 가장 위대한 화가로 추앙받고 있다.


끝까지 하는 힘 15_마크 앨런

5년 후 성공한 나를 상상하고 그렇게 돼라

 

밑바닥 인생이라고 해서 평생 그렇게 살리는 법은 없다.

인생에는 희망이라는 반전이 있다. 또한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상상이라는 달콤한 비타민이 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반전을 꾀한, 상상을 통해 고통을 이겨낸 사람이 있다.

바로 마크 앨런이다.

그의 젊은 시절은 처참했다. 끼니를 해결할 돈이 없었다. 그래서 숙식을 제공하는 어느 종교단체의 신세를 졌다.

“식사 시간입니다. 어서들 오세요.”

모양새가 허름한 사람들이 식당 앞에 길게 줄을 섰다. 그 사람들은 모두 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거나 능력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들 중에 마크 앨런도 끼어 있었다. 그나마 마크 앨런은 종교단체의 주선으로 일을 할 수가 있었다.

그는 차례로 줄을 서서 식판 위에 음식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우걱우걱 음식을 씹어 먹었다.

“맛있게 먹어요.”

봉사자가 마크 앨런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넸다. 그는 눈을 위로 치켜뜨며 째려봤다. 그리고 속으로 말했다.

“자식, 공짜밥 준다고 지금 으스대는 거야!”

마크 앨런은 세상 모든 것을 비뚤 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를 위해 식사를 제공하는 봉사자에게도 감사할 줄을 몰랐다. 그 이유는 지금 자신의 상황이 너무나 초라하고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커피 값 1달러를 어떻게 만들어볼까, 고민했다. 그만큼 생활이 궁핍했고 희망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허름한 아파트에서 서른 번째 생일을 맞았다. 친구도 없이, 그리고 그 흔한 생일 케이크도 없이 덩그러니 방구석에 앉아 외롭게 생일을 맞았다. 주머니에는 달랑 동전 몇 개가 전부였다.

“내 인생이 왜 이렇게 됐지?”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방을 뒹굴었다. 자신의 신세가 너무나 가엾고 처량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창문 틈으로 햇살 한 줄이 들어왔다. 그 햇살은 참으로 눈부시고 아름다웠다.

“그래, 저 햇살처럼 다시 한번 빛나게 살아보는 거야!”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남은 인생을 이렇게 신세한탄만 하면서 보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달라질 것이라고 다짐은 했지만 막상 뭘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그는 ‘5년 후 되고 싶은 모습 상상하기’를 하기로 했다.

먼저 그는 양반 자세로 앉은 후, 눈을 감았다. 집중하기 위해 일단 우울한 생각이나 현재에 처한 상황을 머리 잊기로 했다. 그러나 머릿속에서 그런 부정적인 생각들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 좋아. 너희들을 지우기에는 너무나 힘들어. 같이 가자. 그 대신 나는 5년 후 달라진 나의 모습을 더 많이 생각할 거야.”

그는 자기가 바라는 5년 후 미래를 구체적으로 상상하기 시작했다.

“나는 분명 5년 후에 책을 한 권 펴낼 거야. 그 책을 펴내기 위해서 밤낮으로 열심히 글을 쓰고 자료를 수집할 거야. 드디어 내 책은 세상에 나왔고 그 책은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될 거야. 그리고 그것을 발판으로 출판사를 차리고 꿈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을 섭외해서 그들의 책을 펴낼 거야. 시간이 나면 음악에도 손을 대야지. 그리고 성공한 나를 추앙하고 감동받은 사람들을 위해 강연회도 열 거야. 그리고 또 5년 후 나는 백만장자가 될 거야. 아니, 되고 싶은 게 아니라 분명 나는 되어 있을 거야.”

그는 상상을 멈추고 눈을 떴다. 그의 얼굴 표정은 한결 맑아졌다.

상상 속의 일이었지만 마치 현실인 듯 느껴졌다.

“어, 이거 신기하네. 정말로 내가 작가가 된 것 같고, 출판사 CEO가 된 것 같고, 백만장자가 된 것 같아.”

그는 상상이 주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그 뒤로 그는 매일 아침 ‘5년 후 성공한 자신’을 계속해서 떠올렸다. 상상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래, 피카소는 말했어. ‘나는 항상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한다. 그렇게 하면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나도 이제 내 머릿속 상상을 현실로 만들 거야. 도전할 거야.”

그는 상상을 행동으로 변화하였다. 미친 듯이 글을 쓰기 시작했고, 미친 듯이 일을 했고, 미친 듯이 성공을 향해 뛰어다녔다.

그리고 몇 년 후 마법과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첫 출판한 책이 전 세계 30개국 출판이라는 큰 성공을 거두게 된 것이다. 그 뒤로 그는 매일 아침, 5년 주기로 더 발전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5년 후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5년 후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
“5년 후 나는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5년 후 그의 상황은 과거에 비해 훨씬 더 발전했고 빛났다. 마침내 그의 출판사는 매년 1,50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회사로 성장했고 그는 캘리포니아의 고층 건물의 주인이 되었다. 물론 그도 책을 펴냈다. 그 책은《백만장자 코스》이다. 그리고 그는 또 다른 꿈인 음반을 내는 일도 이루었다.


꿈을 이루기 위한 3단계 과정

  1. 꿈을 정하고 간절히 원해라. 꿈을 정하는 순간, 당신의 인생은 풍요로워지고 생동감이 넘친다. 꿈이 정해졌다면 꿈을 이룬 당신의 모습을 상상하고 매 순간, 간절히 원하라. 간절함은 성취를 불러들이는 힘을 가지고 있다. 
  2. 모질고 독하게 실천하라. 아무리 간절히 원한다고 해서 생각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그 꿈은 언제까지나 공상에 불과하다. 일단 부딪쳐야 한다. 그래야 깨지든 통과하든 결과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왕 할 거라면 모질고 독한 실천력을 발휘해라. 모질고 독하지 않으면 그 무엇도 성취할 수 없다. 
  3. 꿈을 성취하고 전파하라. 성취의 달콤함을 마음껏 누리되 그 기간이 길어지면 안 된다. 최고를 유지하기 위해선 꿈을 이루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꿈은 끝이 없다. 완성되는 순간 다시 시작하는 것이며 꿈을 나누는 게 더 큰 행복이다. 

전 세계 수많은 기업과 독자들의 삶을 성공으로 이끄는 최고의 동기 부여가인 마크 피셔는 이렇게 말했다. "꿈을 포기하면 두 가지 대가를 치르게 된다. 하나, 삶의 반 이상이 고통스러워진다. 둘, 결코 부자가 되지 못한다. 꿈을 포기하지 않으면 두 가지 보상이 따른다. 하나, 인생의 반이 즐겁고 신명 난다. 둘, 결국 반드시 부자가 된다."

종이에 꿈을 자신 있게 적아라. 그 종이를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 붙여놓아라. 그리고 눈으로, 가슴으로 그 꿈을 익히고 절대로 두 번 다시는 그 꿈을 포기라는 지우개로 지우지 마라. 스스로 지우지 않는 이상, 그 꿈은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다. 꿈이 곧 현실이 되고 미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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