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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노트

[한국 에세이]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_"나만 참으면 끝나는 일은 없다"

by 노트바이S 2025.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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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에세이]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_"나만 참으면 끝나는 일은 없다"

제목 :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저자 : 김수현
출판 : 다산북스
발행 : 20.05.14   
쪽수 : 296쪽
ISBN : 9791130629636

『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

 

 

나만 참으면
끝나는 일은 없어요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하던 당시, 업계에서는 작업물의 가격을 책정하는 게 워낙 제각각이었다.
예를 들어 로고 디자인 작업이라면, 몇만 원 수준에서 몇천만 원까지 다양했다.
정해진 규정이 따로 없다 보니 어떤 클라이언트를 만나는지도 중요했는데 가끔 최저 시급의 절반에도 못 미칠 금액으로 작업 의뢰가 들어오기도 하고, 무제한 이용권이라 생각하는지 추가 작업을 계속해서 요구받을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이렇게라도 해서 돈을 버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가도, 아직 굶어 죽진 않겠다 싶으면, 결국에는 거절하곤 했다.
더 절박한 누군가는 그 부당한 요구를 들어주겠지만, 적어도 그들에게 고맙다는 생각은 할 수 있길 바라며 
무리한 요구라고 당당하지만 정중하게 말했다.

내가 무리한 요구를 수용하게 되면, 상대는 무리한 요구를 가능한 요구였다고 생각하게 되고, “지난번에 다른 사람은 해줬는데”, “지난번에 다른 사람은 괜찮다고 했는데”라고 말하며, 더 당당히 부당한 요구를 하게 된다.
그건 결국 시장 전체를 망치게 되고, 피해를 다른 사람과 나눠 갖게 된다.
내가 한 번 참고 넘어가 버려서 모두가 참아야 할 수도 있는 거다.

그래서 선의는 신중해야 한다.

개인의 선의가 꼭 전체의 정의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며, 광장에 모여 손을 맞잡는 것만이 연대가 아니다.
때론, 부당한 요구에 응하지 않는 게 최선의 선의이자, 연대일 수 있다.

 

 

돈 버는 건 더럽고
치사한 일이 아니다

 

종종 직장 생활에 대한 고민을 들을 때가 있다.
갑질하는 고객, 무책임한 상사, 양심 없는 오너.
개인적인 사정을 모르니 그만두라고 말할 수도 없고, 뾰족한 수가 없어서 “돈 버는 게 원래 더럽고 치사하다”는 말을 내뱉으려다 문득 ‘정말 그런가?’ 싶은 의문이 생겼다.
힘들고 어려운 거야 그렇다 치지만, 왜 더럽고 치사하기까지 한 걸까.
이 체념 섞인 위로는 가해자가 정한 사회의 정의 아니었을까.

나도 견뎠으니, 너도 견뎌야 한다고.
세상이 원래 그런 거라고.
돈 버는 건 원래 더럽고 치사한 일이니, 돈을 벌기 위해선 응당 무례와 괴로움을 느껴야 한다고 말이다.
그래서 갑질은 늘 그렇게도 당당했다.

 

유명세에는 얼굴 없는 이들의 비난과 악플이 포함되어 있고, 월급에는 비인간적인 대우를 견디는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이 정도 모욕에 징징거리면 안 된다’는 논리가 따라붙으며, 왜곡된 평등주의는 불필요한 고통과 모멸을 남겼다.

그런데 이렇게 되자 깨진 유리창 법칙처럼, 쓰레기가 쌓인 골목길처럼, 모욕이 있는 곳에서 모욕은 더 쉬워졌다.
그리고 이 모욕 대잔치의 결과, 내가 모욕에 동의한 만큼 모욕을 주고받으며 살게 된다.

그런데, 꼭 더럽고 치사하게, 모두가 공평하게 모욕과 불행 속에서 살아야 할까.
아니, 우리는 모욕의 재생산을 중단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껏 세상이 어떻게 돌아갔건, 원래 더럽고 치사한 거라고 체면 하며 동의하지 않아야 한다. 

모욕에 익숙해지지 않아야, 함부로 모욕하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는 더럽고 치사했다고, 되돌려 주지는 말자. 

적어도 그 모욕에 익숙해지지 말자.

 

그래야 우리가,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더럽고 치사하지 않은 세상에서 산다. 

 

+

모욕당하는 방법은 그것에 굴복하는 것이다. 

사람은 요구하는 만큼만 존중받게 된다._윌리엄 해즐릿

삐- 선 넘지 마세요.

 

 

무례함에도
과속 방지턱이 필요합니다

 

한 출판사 편집자가 조언을 구한 적이 있다.
권위적인 저자가 한 분 계신데, 어쩌다 미팅할 일이 있으면 늘 다짜고짜 반말을 하니 때론 자존감마저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고.
이럴 때 참 어렵다.
나의 감정을 드러내는 게 내가 속한 조직에 불이익이 될 것 같을 때, 혹은 어려운 상사나 중요한 클라이언트 앞에서
자본주의의 미소를 지켜야 할 때, 가만히 있는 게 정말 최선의 선택일까.

심리학자 부부인 고영건, 김진영 교수의 책《행복의 품격》에 따르면 삶에는 커다란 사건들보다 일상적 골칫거리가 더 치명적이라 이야기하는데, 삶이 파괴되는 건 고통의 총합이 아닌, 그 순간에 느끼는 무력감의 정도에 달려 있다고 한다.
이때 무력감은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느낄 때 생겨난다.
그렇기에 매번 싸울 수는 없겠지만 삶을 지켜내고 무력감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우리가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좋은 방법이 있을까?

 

《정신적 폭력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는 책을 참고하면, 아주 쉬운 단어가 있다.
그건 바로, “네?”

여기에는 약간의 연기력이 필요한데, 싸우자는 건 아니지만 요즘 세상에도 이런 퇴행적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에 대한 순수한 놀라움을 담아, 아주 짧게 “네?”라고 말하며 놀라는 거다.

놀랐다는 이유로 비난하는 사람은 없고, 어쩌면 우리의 마음을 전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우리의 반응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는 빌런들이 존재하니 특단의 강경책이 필요하겠지만 다행히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이상해 보이는 걸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상대와 약간의 마찰력을 만든다면, 그들이 괴물이 되지 않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도로 위의 과속 방지턱처럼 약간의 불편함이 서로를 안전하게 하는 것이다.

 

이때, 잊지 말아야 할 건 갑에 대한 예의가 아닌, 인간에 대한 예의는 갖춰야 한다는 것.
종종 후회로 남는 자기표현은 표현했기 때문이 아니라 정중함을 잃었기 때문이다.
무례한 상대에게 친절할 필요는 없지만, 같이 무례해질 필요도 없다.
구겨진 표정으로 투덜거리거나 비열해지라는 게 아니라 정중하게, 내가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조금씩 알려주는 거다.
표현에 따른 불이익을 걱정하지만, 인간에 대한 예의와 정중함을 잃지 않는다면 문제가 될 건 별로 없다.

 

만약 그럼에도 불이익이 생긴다면, 그런 곳 혹은 그런 사람은 처음부터 떠나는 게 좋을 수 있다.

그러니 아주 작게라도 표현해보자.

무력해지지 않기 위하여.
서로의 존엄한 삶을 위하여.

 

우리는 누구나 자신을 지킬 권리가 있다. 

야. 넌 살 좀 빼. / 차라리 널 빼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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